어떤 집에 와 있었다. 내 집이 분명 아니었다. 그런데 그 집 현관에 내 신발이 있었다. 내가 신고 간 신발이 아니었다. 상표 이름 "덱스터"…..내가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신발. 미국, 일본,그리스,터키,이탈리아,프랑스,영국,이집트를 나와 동행했던 신발이었다. 시골 흙도 묻고, 도시 먼지도 묻은 신발이었다. 하도 편해서 신고 있다는 것을 잊은 적이 많았다. 그 신발 두 짝이 그 집 현관에 있었다. 내 신발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었다. 여기 있어서는 안되는데,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데, 하다가 잠을 깨었다. 꿈이었다.
꿈에 본 내 신발이었다. 잠을 깬 직후 현관으로 나가보았다. 꿈에, 남의 집 현관에서 보았던 신발이 내 집 현관에 놓여 있었다.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나에게도 여러 켤레의 신발이 있다. 발이 너무 커서 나라 안에서는 신발 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내 발에 맞는 신발이 있으면 사두는 버릇이 붙었다. 지금이야 발 큰 아이들이 많아 그런 일이 없지만 2, 30년 전에는 그랬다. 나에게는 2, 300달러 나가는 고급 구두도 여러 켤레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신발은, 이탈리아 모델을 흉내내어 만든 중국제 덱스터, 4년전 미국에서 11달러(2500원) 주고 산 구두다.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랜드로버 구두와 흡사하다. 비싼 신발, 내가 아껴가면서 신는 신발 다 두고 왜 덱스터가 내 꿈에 나타났을까…. 나에게는 꿈을 메모하는 버릇이 있다. 나는 내 꿈을 분석한다. 꿈꾼 직후에 분석하기도 하고 세월이 좀 지난 뒤에 분석하기도 한다. 지난해 그리스와 로마 신화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서"를 첫 장의 제목으로 달았다. 신화에는 신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황금 양털을 찾은 것으로 유명한 영웅 이아손의 별명은 "모노산달로스", 즉 "외짝 신발 사나이"다. 영웅 테세우스는 아버지가 숨겨놓은 신발을 찾아들고 아버지를 찾아간다. 달마대사가 중국에서 육신을 벗고 고향 향지국으로 갈 때 가져간 것도 외짝 신발이었다. 달마대사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도 외짝 신발이었다. 신데렐라가 왕자의 아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외짝 신발 덕분이었다. 콩쥐가 원님의 아내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외짝 신발 덕분이었다. 신발, 혹은 외짝 신발은 내가 오래 들고 있던 화두였다. 신발이란 무엇인가? 나는 내 집의 이분화(二分化)를 예감했다. 누군가가 떠나겠구나, 길이 들어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처럼 버릇 들어 내 몸에 맞는 삶에 변화가 오겠구나, 하고 나는 본 듯이 예감했다.하지만 그것은 불길한 예감이 아니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꿈을 꾼 지 한 달이 못 되어 과천 내 집 옆에 있던 내 작업실을 경기도와 강원도의 접경으로 옮겨야 하는, 즐거운 일이 발생했다. 오래지 않아 아들은 입영 영장을 받고 입대하는 일이 생겼다. 이어서 딸의 편입 허가서가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날아들었다. 아들딸이 떠나고 나면, 내가 20년 전에 마련한 과천의 아파트는 가지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나는 집 처분할 결심을 미루었다. 아들이 아무래도 그 집을 쓰겠구나 싶어서 기다렸다. 입대한 아들이 며칠 전, 과천에서는 20분 거리인 용산의 미군 기지로 배치되었다. 아들은 주말이면 과천 집을 들락거릴 것이다.더없이 편한 내 덱스터 신발 같은 그 집을 우리는 한동안 더 들락거릴 것이다. 이분화는 이루어졌다. 나는 날마다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다.-------
신발이 다른 곳에 놓여 있는 꿈을 꾼후에, 새롭게 작업실을 내게 되는 일로 실현되고 있다.
